안젤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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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 여행스토리/해외여행

북경이야기

썬앤썬 2017. 2. 11. 12:40

북경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딸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한번은 꼭 둘이서 해외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으니까! 지금은 여행 앱도 많고 항공권앱을 검색해서 편리하게 여행 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신문광고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가며 찾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은 체험학습이라고 해서 부모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학교에서 인정해 주고 권장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방학이 되어야지 수업을 빼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좀 부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방학시즌이 되면 좀 저렴하면서도 알찬 여행 상품이 쏟아져 나왔었다. 1인당 299,000원에 숙박은 인터컨티넨탈 호텔이었다. 지금도 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꼽는 것이 숙박이다. 다른 건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라면 오케이라고 생각하고 결정을 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해외 첫 여행이라서 아이도 나도 설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내식이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 둘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는 여행 내내 함께 하는 파트너처럼 딱 붙어다녔으니까

지금이야 혼자서도 편하게 출국장 입국장을 알아서 다니지만, 그 때는 가이드를 놓칠까봐 최대한 가이드의 꽁무니 바로 뒤쪽을 사수하려고 엄청 열심히 걸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


머니머니해도 북경은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을 보러 가는 곳이다.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한 천안문 광장은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장소이다. 나에게는 천안문에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경찰들이 인상적이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들이었고, 지금도 그 배경 속에 깃발든 가이드를 줄줄이 따라다니는 관광객들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안내를 듣던 딸아이와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지막 황제의 배경이었던 자금성!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궁전으로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규모자체로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전체 넓이만 72만 평방미터, 9000여 칸의 방~그 규모 자체가 그냥 보물아닌가말이다. 1987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는 그 곳 뿐만아니라 딸아이와 나는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북경에 가면 오리구이를 먹어보자. 사실 패키지로 떠나면 최대한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서 중국 특유의 향을 최대한 덜 넣은 음식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갔던 식당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특유의 향이 코를 찌르는 듯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딸아이도 나도 정말 오리고기를 많이 잘 먹었고 다른 중국요리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역시 우리 모녀는 대식가 맞다며 함께 키득거렸던 생각이 난다.


여행하며 조금 불편했던 것은 바로 옵션이라는 것이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지금은 언론에서도 이 옵션으로 피해신고를 하는 분들도 많다며 보도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여윳돈을 많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옵션을 모두 참여하는 것은 초보여행자에게 좀 무리가 있었다. 욕을 먹더라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버스에 탄 모든 분들은 옵션을 전부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과감하게 몇가지 옵션은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그 시간동안 우리끼리 자유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사실 겉으로는 신나는 모험이 될꺼야라고 말했고 아이도 더 신나했던 기억이 나지만, 정작 내 속은 뭔지 모를 아픈 덩어리 같은 것이 목에 자꾸 걸리는 걸 힘껏 참았던 생각이 난다.


우리끼리 자유여행이라는 명목으로 그냥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녔는데, 중국 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뭐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중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많이 접했으니까 콩글리쉬라도 하면 될듯 싶었는데...참 난감했었다. 하지만 콩글리쉬보다 더 강한 것이 바로 바디랭귀지 아니던가? 우리는 그럭저럭 바디랭귀지로 중국유람을 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작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젊은 청년 사장님이 영어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관광객인 걸 단숨에 알아보고는 정말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카페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지만 나로서는 참 아슬아슬한 시간이었기에 잊을수가 없는 기억이다. 언젠가 북경에 다시 갈 일이 생긴다면 그 카페 사장님을 만나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지만, 사실 어디였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저 내게 살면서 그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와 비슷한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여유로움을 내게 주시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북경에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만리장성이야기가 왜 안나오는가 했으리라. "물론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好漢)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북경으로 출발할 때부터 만리장성이 가장 기대되는 코스였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했고 2000여년의 역사와 5천만미터에 이르는 길이의 만리장성은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막이었다. 세계7대 건축물, 또한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 만리장성에 직접 가보니,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며 바라보아서인지 더욱 장관이었다. 또한 우리는 아기자기하게 간식을 사서 먹으며 걸으면서 한국의 남한산성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북경은 중국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현장이었다.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유명한 이화원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그 당시의 권렦이 어느정도였는지 가늠케하는 곳이었다. 별장하면 당연히 호수다. 곤명호라는 호수는 인공 호수인데, 너무나 수려해서 정말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으나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찍는 곳마다 사람천지를 찍는 것 같아서 몇 컷만 찍었던 기억이 난다.


2008년 북경올림픽대회의 주경기장으로 활용괴었던 냐오차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는 탁 트인 공간이 많아서 우리는 정말 아이처럼 뛰어다녔다.


그 외에 패키지 여행은 쇼핑이다. 무려 3회나 되는 쇼핑장소를 방문했는데, 사실 주머니가 든든하지 못해서 두근반세근반 하면서 다녔더랬다. 물론 현이의 시계도 사고 몇가지 구매해 오긴 했는데, 흥정하는 행위는 정말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었다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많이 오기때문에 한국말로 호객행위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흥정할 때 디테일하게 대화가 되지 않으니, 계산기로 흥정을 하는데 그야말로 50%이상 깍으려고 애써야만 제 가격에 겨우 살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현이가 했던 말은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공부를 좀 해야겠어" 하하하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아니던가?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잔소리보다는 체험을 통해 느낀 바 대로 성장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껸다고나 할까!!!!!물론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최근에 중국에 다시 다녀왔는데, 북경을 다녔던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른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었다. 하지만 내 생애 처음 딸아이와의 첫 해외 여행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